표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본문에는 단 한 글자의 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요소만 그림과 어울리게 디자인하여, 오로지 그림만을 통해 희망과 사랑, 경이로움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그저 그림을 보고만 있어도 생명, 평화, 사랑, 우정, 자연의 소중함이 오롯이 느껴지며, 자기만의 독특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도마뱀 주주와 호랑이 호는 친한 친구예요. 요즘 주주는 걱정이 많아져서 웃음까지 잃었어요. 호는 주주의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고민 끝에 호는 주주에게 걱정을 상자에 담으라고 했어요. 주주의 걱정 상자는 산더미 였어요.
호는 주주에게 괜찮다고 위로하며 걱정 상자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요. 주주의 걱정 상자는 어떻게 될까요?
주주의 마음 속에 걱정이 사라지고 웃음이 찾아올 수 있을까요?
지은이는
걱정거리 앞에 움츠려 있기보다는 여유롭고 당당하게 걱정을 헤쳐 나가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네요.
'괜찮아!,
잘될 거야!,
할 수 있어!,
나도 그래! 사랑해!, 끝!'
같은 한 마디 말로 당차게 걱정을 이겨 내도록 용기와 걱정을 이겨 내도록 용기와 응원을 보내고 있어요.
해보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 개미, 앤티.
넘치는 의욕과 달리 사사건건 사고만 치기 일쑤.
이를 견디다 못한 여왕 개미와 언니 개미들은 "저 녀석 좀 어떻게 해봐!"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요. 커다란 흙덩이를 나를 수 없다면, 그 대신 풍뎅이라도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앤티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아무리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앤티라도, 실패를 마주하다보면 잠시 지치고 시무룩해질 때가 있는데요......
앤티가 보여주는 씩씩하고 재미있는 성장 이야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좌절을 '나답게' 해결하는 앤티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나는 왜 이럴까요?
나는 왜 안될까요?
때로 '나' 라는 존재가 나를 깊은 좌절에 빠뜨리기도 해요. 그러나 그런 나를 진정으로 구할 수 있는 건, 부모도 친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이지요.
자신의 인생에 첫 발을 내딛는 아이들에게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떨치고 오로지 네 인생을 자각하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 타는 차, 너는 이미 네 자동차에 타고 있다고. 엄마나 아빠 차에 얹혀 있었지만 앞으로 네 차를 꺼내 홀로 운전하는 거야라고. 지금은 바로 그것을 준비하는 때라고 말입니다.
전작의 가슴 저린 문장을 기억하는 자에게 이 책은 다소 황량하고 낯선 풍경을 보여줍니다. 마치 벽에 통계 숫자가 끝도 없는 적혀있는 법정에 불려나와서 공소장을 읽는 검사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어색한 기분이 듭니다. 검사가 냉정하게 말하는 수치와 진실은 나 같은 소시민이 차를 타고 출근하고 일하고 다시 퇴근해서 마켓에서 식료품을 구입하고 티브를 보다가 잠이 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과연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가? 나 하나 쯤이야... 검사의 목소리는 방사선처럼 내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를 통과해서 지나갑니다. 이윽고 피폭된 내 마음은 불편해 집니다. 진실은 언제나 듣고 나면 찜찜합니다.
영국이 브렉시트에 찬성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좀 안타까왔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내가 안타까워 했는지(사실 지금도 안타깝긴 마찬가지)가 불가사의합니다. 내 발등의 불이 급한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국적에 상관없이 마음대로 넘어다니며 밥 먹고 잠 잘 수 있는 '유럽인'들의 자유가 너무 부러워서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 공동체라는 것을 이루어낸 유럽인들에 대한 경의와 존중심이 있었는데 영국인들이 무슨 심보로 멋진 그림에 터무니없는 낙서를 하는가...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이 들었던 거겠죠.
앎이 달라지면 느낌이 달라질 터. 영국사에 대해선 새하얗게 무식한 상태보다 조금이라도 알면 다른 느낌으로 유럽을 달리 볼 수 있겠지 하면서 이 책을 펼쳤습니다.
결론은 영국인의 유럽정체성에 대해 공부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추억을 간직한 영국인들로서는 자신들의 쪼그라든 신세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들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사'라는 깊은 함정을 고려하면 이런 공감이 매우 드럽고 힘든 측면이 있긴 한데, 과거 한 때 영광이 컸었던 나라들. 이를테면 중국, 영국, 그리고 좀 거시기 하지만 어쨌든 위세가 컸었던 러시아와 일본까지 이 나라들 사람들을 대할 때는 신생 독립국 출신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또 다르게 그들 국가정체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우쭈쭈~해주는 척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시비비와 별개로. 일단 그렇게 해야 형식적 대화 이상 속깊은 대화가 가능해질 테니까요. 아마 외교관들은 이런 거에 전문가이겠지요.